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푸블리우스 퀸크틸리우스 바루스 (문단 편집) == 사후 == 아우구스투스의 경우, 식민지에 대한 강경적인 대응이 주류인 바루스가 이스라엘에서 부임중이었는데, 여기서 난폭한 숙주민들의 진압을 잘 하는 것을 전해듣고 일부러 게르마니아 총독으로 부임시켜놓고도, 그 이후에 [[일리리아 대반란]] 때에 8개 군단이나 빼가고 꼴랑 3개 군단만 남겨놓은 것이며, 이는 아우구스투스가 최악의 인사 조치를 취한 것이다. 아우구스투스는 아내 리비아가 데리고 온 두 양자 중 후계자로 점찍은 드루수스 요절 이후 열린 드루수스 장례식에서, "아버지로서 아들의 유지를 받아 반드시 게르마니아를 로마 땅으로 만들겠다"고 연설할 정도로 공을 들이고 있었다. 그래서 바루스가 게르마니아에서 3개 군단을 잃고 목숨마저 잃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큰 충격에 빠졌다. 그는 이 소식에 큰 충격을 받은 나머지, 옷을 찢고 머리도 깎지 않으면서 몇 달간 이따금씩 기둥에 머리를 박으면서 '''"바루스! 내 군단을 돌려다오!(Quintili Vare, legiones redde!)"'''라고 울부짖었다는 역사가 [[수에토니우스]]의 책에 기록되어있다. 당시 로마는 28개 군단을 운용하고 있었는데, 그중 3개 군단 상실과 패배의 여파로 라인 강 너머 확장한 영토를 모두 상실했다. 이 손실을 복구하는 데 기록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지만 '''200년'''가량 걸렸다는 주장이 있는데 이는 로마의 국력을 고려해 봤을 때 현실성 없는 주장이다. 아우구스투스가 안토니우스와의 내전을 끝낼 당시 아우구스투스에게는 무려 60개의 군단이 존재했었다. 단지 정치력이 뛰어났던 아우구스투스가 쓸데없이 군단을 늘려 국방비를 낭비하지 않기 위해 28개 군단으로 감축했고 3개 군단의 복원을 선택하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사실 아우구스투스가 분노한 것은 이 전투 이후 게르만족은 로마의 통제를 벗어나게 되었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당시 로마가 얻을게 딱히 없던 게르마니아 지역을 점령하거나, 대규모 군단을 편성해 이곳을 공략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게르마니아를 속주화할 수 있었다면 국경을 확장하고 게르만 족을 통제함으로서 로마 제국 영토 내의 치안을 안정화시킬 수 있었다. 내전이 끝나자마자 아우구스투스가 자신의 모든 것이라고 표현한 친구이자 복심 아그리파를 갈리아 안정화 총책임자로 맡길 당시부터, 그와 그 일가 남성 황족들이 게르마니아 정복에 나선 이유도 이런 목적이 컸다. 이런 기회가 사라졌으니 아우구스투스 입장에선 뼈아픈 실수였다. 만약 로마가 총력을 기울였다면 군세를 확장하고 점령하는 것은 가능했겠지만 실질적으로 국력을 크게 악화시키고 얻는 것은 크게 없는 [[피로스의 승리]]에 불과했을 것이다. 국경이 넓은 로마가 이 지역에만 총력을 기울이는 것도 어리석은 선택이고, 당시 이미 장기화된 게르만 정벌과 국력 소모로 로마 내에서 비판 목소리도 높았다. 또한 서로 죽고 죽이는 총력전을 벌이면서 상호 간 감정이 악화된 상황에서 평화로운 공존이나 속주화는 거의 불가능해진 상황이라, 무력으로 점령해도 치안을 유지하려면 거대병력을 상주시켜야하기 때문에 영토를 유지하는 것도 불가능해졌다. 결국 게르만 족이 로마의 영향력 밖으로 벗어나면서 이들은 자체적인 세력으로 성장하게 된다. 이때의 트라우마가 그의 말년까지 남아있었는지, 야사에 따르면 죽는 순간까지도 후계자인 [[티베리우스]]와 주변 사람들에게 "[[토이토부르크 전투|그거 내 탓 아니지?]]"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일단 정사라고 할 수 있는 역사책에서 아우구스투스의 유언은 "연극은 끝났으니, 내가 내 역할을 잘 한 것 같다면 박수를 쳐주게" 정도로 기록되어 있긴 하다. [[앗! 시리즈]]의 '혁명이 후끈후끈'에서는 야사와 정사를 적당히 섞었는지, "난 그래도 꽤 잘 한 편이지?"라고 하는데 그 뉘앙스가 '바루스가 토이토부르크 전투를 말아먹긴 했지만, 그래도 난 잘 한 편이지?'라는 느낌이 나게끔 나온다.] 아우구스투스가 사망한 뒤, 황제가 된 티베리우스는, 동생 드루수스의 아들로 아우구스투스의 손자인 [[게르마니쿠스]]를 보내 재차 게르마니아를 침공한다. 이때 게르마니쿠스는 게르만족에게 큰 타격을 주며, 토이토부르크 전투의 패배를 갚아주었다. 하지만 티베리우스는 로마 제국의 국경을 [[엘베 강]]으로 확장시키지 않고 [[라인 강]] 전선에 고정시킴으로써 향후 300년간의 국경선을 확정지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